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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말, 말들

윌리엄 셰익스피어 - 한여름 밤의 꿈

by 채니 님 2026. 6. 16.

 

한여름 밤의 꿈
- 윌리엄 셰익스피어

  • 시작하기에 앞서,

아직 책장에도 사놓고 읽지 못한 책들이 가득인데 또 책을 사버렸다.

계기는 교보문고의 협박 문자, 무려 적립금 4천원이 사라진다는 문자였다.

언젠가 책은 반드시 또 살 텐데 4천원의 적립금을 그냥 날릴 순 없었다.

 

그렇다면 대신 정말 읽고 싶었던, 그리고 분명 다 읽을 수 있을 책을 고르자.

먼저 몇 가지 구절을 읽고 마음에 들어 장바구니에 몇 달째 넣어두었던 '체호프 단편선'을 골랐다.

아, 만원을 넘기지 못해 배송비 3천원이 붙는다.

이렇게 되면 내 적립금 대부분을 그저 배송비에 할애하는 셈이다.

 

결국 한 권을 더 고르기로 했다.

셰익스피어의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으나, 특유의 문체가 단문으로 봐도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셰익스피어의 책을 사기로 했다.

문체가 재미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분명 끝까지 집중하여 읽을 수 있으리라.

 

사실 4대 비극이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아주 유명한 작품 외에는 잘 모른다.

약간 책 고르는 데 홍대병이 있는 편이라 유명한 작품은 이 악물고 잘 읽지 않기 때문이다.

 

그 외 작품들 중에서 그나마 제목 정도는 들어본 '한여름 밤의 꿈'을 골랐다.

구매 전 대강 소개를 읽어 보니 신화 인물들의 이름들도 나오고 극대본 형식으로 적힌 책 같았다.

작년 쯤 그리스 로마 신화에 꽤 빠져 있었던 시기도 있었고, 극대본도 좋아하기에 바로 결정했다.

 

더하여, 이 카테고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독후감이다.

그저 읽었던 책에 대한 감상이 조금 지나면 금세 잊게 되어서, 잊지 않고 싶은 책들을 기록하는 장소이다.

그렇기에 지극히 개인적인 사담과 사견이 포함될 예정임을 참고해 주시길.


  • 첫인상

은 '아, 그렇게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 하는 이유가 있구나.' 였다.

 

중반부가 조금 지루하다는 후기를 보아서 살짝 걱정했는데, 초반만 보아도 전혀 걱정할 필요 없겠구나 싶었다.

술술 읽히는 문체, 대화와 어휘가 화려한데도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었다. 장면 묘사도 훌륭하고 풍부했다.

프랑수아즈 사강 이후로 아주 마음에 드는 작가를 만난 것 같다.

 

독서 홍대병을 치유하기에 충분했다. 셰익스피어의 책들은 앞으로 모두 읽어 보고 싶어졌다.

 


  • 등장인물

극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까진 아닌데 마음에 남았던 인물은 허미아.

최고의 미녀이면서도 라이샌더를 향한 사랑에 눈이 멀고 목숨 거는 멘헤라가 오는 여자.

요정들의 실수에 휘말려 그리 상처 받았던 밤을 보냈는데도, 결국 다시 돌아온 라이샌더를 남편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걸 한여름 밤의 꿈으로 치부하며 덮어놓고 행복한 신부가 된 여자.

아무리 상처 받아도 사랑에 눈 먼 모습에 내가 투영되어 마음이 쓰였다.

 

또, 테세우스와 히폴리타는 승전국의 왕과 전쟁 포로 관계로 결혼하게 된 사이인데도, 내 시선에서는 극중 어느 커플보다도 가장 서로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느껴졌다는 점이 신선했다.

시작이 어떻든 사랑은 별개라는 걸까. 혹은 그 시대상으로는 그저 남편으로, 아내로서 한 번 인정했다면 그만큼 충분히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이야기였을까.

나는 전자의 시선으로 보고 싶었던 커플이었다.


  • 말, 말, 말들
라이샌더 : 아아! 지금까지 내가 읽은 그 어떤 것에도 이야기나 역사로 들었던 그 어디에서도
참사랑의 길은 결고 순탄한 적이 없었으니 ... (중략) 

아니면 선택하는 마음은 일치해도 전쟁이나 죽음 또는 질병이 사랑을 공격하여
그것을 한순간의 소리처럼 덧없이 그늘처럼 빠르게, 꿈처럼 짤막하게
아니면 꽝 하고 터지며 하늘과 땅 양쪽을 밝힌 뒤 누군가 '저것 봐라!'
말하기도 이전에 어둠의 아가리가 꿀꺽 삼켜 버리는 칠흑 밤의 번개처럼 짧아지게 만들어.
빛나는 것들은 이처럼 너무 빨리 사라져.

허미아 : 참다운 연인들이 언제나 좌절을 겪는다면 그건 마치 운명의 포고령과 다름 없네.

 

그런 건가, 모든 사랑은 순탄치 않고 포고령과 같은 예상치 못한 좌절을 겪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이걸 이겨내는 연인들만이 결실을 얻어간다면, 그 결실의 끝은 과연 어디의 무엇인지.

함께 죽는 날까지 믿음과 사랑을 지키고 나란히 묻히는 것이 셰익스피어가 말하는 참다운 연인들의 결말일까?


  • 커튼콜

사랑에 눈 먼 인간들은 멍청하다. 눈 뿐만 아니라 판단력과 상식까지 몽땅 상실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기꺼이 그런 멍청한 사랑을 하기에 인간인 것일 테니.

하지만 큐피드에 화살에 쉽게 속아 가리어지는 사랑이라면 과연 모든 사랑이 정말 다 진실된 것인지, 그런 의구심은 들게 하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매우 짧은 단편이었지만 꽤나 많은 고민을 하게 했던 책.

무한도전의 '한여름 밤의 꿈' 편을 중간에 알게 되어버려서 정준하 허미아가 자꾸 떠올랐지만 그마저도 즐거웠다.